덕수궁은 조선시대의 궁궐이다.
원래 왕가의 별궁인 명례궁이었으나, 임진왜란 직후 행궁으로써 정궁 역할을 했으며, 광해군 때 정식 궁궐로 승격 경운궁이 되었고 대한제국 때는 황궁(皇宮)으로 쓰였다.
1907년 고종 퇴위, 순종 즉위 이후 이름이 덕수궁으로 바뀌었다.
현재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정동) 서울특별시청 건너편에 위치해 있다.
엄격한 원칙을 고수했던 조선 초가 아니라 구한말에 증건(增建)된 전각들이 꽤 있기 때문에, 即(卽), 眀(明) 등 약자(略字)나 속자(俗字)가 적힌 편액(현판)들이 다른 4개 고궁보다 많다.
고려시대의 한양부 향교가 있던 장소로 비정된다.
일제강점기, 6.25 전쟁 등을 거치면서 수난을 당했으며, 현재는 대한제국 시절의 1/3 이하로 그 면적이 줄어들었다.
덕수궁 주변에는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로마네스크)과 성가수녀회 본원, 성공회 서울교구장 공관(양이재라는 이름의 한옥) 주한영국대사관ㆍ주한러시아대사관ㆍ주한캐나다대사관, 덕수초등학교 등도 자리한다.
대한문(大漢門)은 덕수궁의 정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과거 덕수궁의 정문은 중화문 남쪽에 있었던 인화문(仁化門)이었으나 1904년(광무 8) 4월 14일 화재로 전소되면서 동쪽에 있던 대안문(大安門)을 대한문으로 개칭해 정문으로 삼았다.
원래는 태평로 한가운데에 있었으나 도로 확장으로 말미암아 1970년 8월 21일 이건공사를 시작해 1971년 1월 2일 마무리되어 원위치보다 22m 뒤로 밀려나게 되었다. 시청앞 광장과 마주보고 있으며, 그 건너편에는 고종이 황제 즉위식을 거행한 환구단이 있다.
중화문(中和門)은 중화전의 정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1902년(광무 6) 창건되었으나 1904년(광무 8) 4월 14일 화재로 소실된 뒤 1906년(광무 10) 중건했다.
원래는 중화전 주변을 두르는 행각과 연결되어 있었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부분이 사라지고 중화문 오른쪽에 일부가 잔존하고 있다. 1985년 1월 8일 중화전과 함께 보물 제819호로 지정되었다.
중화전(中和殿)은 덕수궁의 정전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이다.
1902년(광무 6) 창건 당시에는 2층 전각이었으나 1904년(광무 8) 4월 14일 화재로 소실된 뒤 1906년(광무 10) 단층으로 중건했다.
대한제국 때 영건했기 때문에 중화전 답도에는 제후국을 상징하는 봉황이 아니라 황제국을 상징하는 용 2마리가 새겨져 있다.
1985년 1월 8일 중화문과 함께 보물 제819호로 지정되었다.
석조전(石造殿)은 영국인 하딩과 로벨 등이 설계에 참여했으며 1900년(광무 4) 착공해 1910년(융희 4) 완공한 정면 54.2m, 측면 31m의 신고전주의 양식 석조 건축물이다. 원래는 황제와 황후가 거처할 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설했으나 경술국치로 황궁으로 제대로 사용되지 못했다. 완공 후에도 암살시도에 시달렸던 고종은 석조전에서 실제로 생활하지는 않고 행사에만 사용했다. 영친왕이 일본에서 귀국할 때 이곳을 이용하는 등 호텔처럼 운영되었다.
석조전은 광복 이후 1946년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렸으며, 이후 국립중앙박물관과 궁중유물전시관 등으로 사용하다가 2005년 국립고궁박물관이 경복궁에 마련되면서 비게 되어 근대미술관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원래의 황궁으로 복원할 것인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2009년부터 2014년 10월 7일까지 복원 공사를 거쳐 10월 13일 대한제국역사관으로 개관했다. 당시 영국식으로 화려하게 치장되었던 석조전 내부를 관람하려면 덕수궁 홈페이지에서 예약해 해설관람으로만 가능하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구 이왕가미술관)은 이왕직박물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1937년 석조전 옆에 지은 석조 건축물로 회랑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박물관 용도로 지어진 국내 최초의 역사적 건물. 한국전쟁 때 훼손되었다가 1953년 수리한 후 1998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한제국 여권 탁본 체험
준명당(浚眀堂)은 고종이 함녕전으로 처소를 옮기기 전에 한동안 머물며 외국 사절을 접견하던 정면 6칸, 측면 4칸의 전각이다. 1904년(광무 8) 4월 14일 화재로 소실된 뒤 1906년(광무 10) 중건했다. 즉조당과 복도를 통해 이어져 있다. 고종은 늘그막에 얻은 고명딸 덕혜옹주를 위해 이곳에 유치원을 만들기도 했다. 딸바보 편액으로 걸린 '명'이 일반 적인 '밝을 명(明)'이 아니라 '眀'인 점이 특이한데 둘은 모양만 다르고 같은 뜻을 가진 글자이다. 이를 두고 대한제국 측에서 일본의 '일(日)'이 들어간 '明'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眀'라는 한자를 대체해서 썼다는 설이 있으나 낭설이다. '眀'은 '朙'의 이체자이며 엄연히 구한말 전부터 써오던 한자이다. 진짜로 '明'이 마음에 안 들었다면 창경궁에 있는 명정전은 물론 다른 전각들의 편액에 들어간 '明'을 모조리 갈아치웠을 것이다. 덕수궁 내 가이드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반일 감정을 부추기고자 이런 거짓 정보를 퍼뜨린다고 하니 주의할 것. '眀'이 들어가는 건 '중명전(重眀殿)'도 동일하다.
정관헌(靜觀軒)은 1900년(광무 4) 고종이 다과회, 연회장, 음악당 등의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정면 7칸, 측면 5칸의 건물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에 전통 건축 양식이 가미되어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장식이 특징이다.
완공 이후 고종은 이곳에서 커피를 즐겼으며, 현재도 매년 봄과 가을에 명사를 초청한 강연회를 여기서 열기 때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이곳에서 차를 마시며 강연을 청취할 수 있다.
다만 고종실록 등에 의하면 1912년까지 이곳을 어진을 봉안한 장소로 이용한 것으로 보여 단순히 다과회, 연회장 등의 용도로 볼 수가 없다.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 서소문동 및 종로구 신문로1가에 있는 길이다. 길의 이름은 덕수궁의 돌담을 따라 만들어진 길이라고 하여 덕수궁길로 명명되었다. 원래 덕수궁 권역에 있던 길로, 덕수궁 선원전 권역과 정전 권역을 나눈다.
이곳은 '덕수궁 돌담길'로도 유명하다.(네이버 지도에 의하면 가을단풍길이라고도 불린다.) 덕수궁 돌담길은 시민들의 휴식처 혹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알려지기도 한다. 단풍나무와 덕수궁 돌담이 어우러지는 풍경 덕분이다. 정동길, 새문안로2길과 사거리에서 만난다. 그러나 덕수궁길 자체가 그렇게 큰 길은 아니어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거리와는 거리가 좀 있다. 사거리 중앙에 작은 로터리가 존재한다.
가 보면 분위기는 좋은 편. 이곳에 간 사람들이 남긴 후기들도 많이 있으니 참고하자. 여담으로 운교라는, 탁지부 청사와 덕수궁을 잇는 다리가 있었는데 철거됐고, 지금은 그 흔적만이 남아있다. 운교 아래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옛날부터 도로 역할을 했다.
덕수궁 돈덕전 복원의 일환으로 덕수궁길이 살짝 축소될 예정이다. 출처는 문화재청 돈덕전 복원 보고서.
새문안로와 세종대로라는 두 거대 도로을 잇는 위치에 있으나 교통 체증이 심하다는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덕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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