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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대전+충청도

[아산] 현충사 -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 / 본전 / 충무문 / 충의문 / 고택 / 활터

by 훈바오 2024.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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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祠堂)이자 충무공의 업적을 기리는 사당. 1967년 사적 제155호 '아산(牙山) 이충무공 유허(李忠武公遺虛)'로 지정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현충사로 잘 알려져 있다.

본래 충청남도 아산군에 속해있던 곳이었으나, 1995년 옛 온양시와 아산군이 지금의 아산시로 통합되면서 현재 행정 소재지는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에 있다.

이순신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은 현충사 외에도 전국의 여러 곳에 위치해 있다.

전라 좌수영이 있던 전남 여수시의 충민사, 통제영이 있던 경남 통영 한산도의 충무사 등이 그 예이다. 현충사는 그 중 대표격인 형태.

1592년 임진왜란 이후 1598년에 충무공 이순신이 노량 해전에서 전사(戰死)하게 되면서 1706년(숙종 32년)에 지방 유생들이 충무공의 숭고한 호국 정신과 애민 정신을 기리자는 뜻에서 사당을 세울 것을 조선 조정에 건의하였다.

이듬해인 1707년 숙종의 어명하에 지금의 아산에 있는 이순신의 생가에 충무공의 충성스러운 마음을 기리고 나타낸다는 뜻에서 '현충(顯忠)' 이라는 이름을 붙여 세워지게 되었고 이후에는 충무공의 공로와 업적을 기리는 성역(聖域)으로 거듭났다. 참고로 현충사라는 현판은 숙종이 직접 내린 것.

1865년(고종 2년) 어린 고종을 대신하여 국왕 섭정을 맡았던 흥선대원군이 전국 서원 철폐 명령을 내리게 됨에 따라 현충사도 철폐되어 존폐 위기를 맞게 되었는데, 이에 대해 일부 유생들이 충무공의 충성심에 대한 모독과 패륜 행위를 흥선대원군이 저지르고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지만 실상 서원의 폐해를 보면 충무공이 이들을 꾸짖는게 정상이겠지만. 대원군이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원 철폐를 강화함에 따라 현충사는 이를 계기로 역사의 뒤안길로 한때 사라지기도 했었다.

일제 치하에 충무공 종손(13대 종손 이종옥)이 가난해서 고택과 묘소가 포함된 임야, 현충사 부지가 경매에 넘어갔는데 1931년 5월 동아일보의 보도를 통해, 뜻 있는 인사들이 이 충무공 유적 보존회를 조직하고 동아일보사와 협력하여 전국 각지에서 총 16,021원 30전의 성금을 연 2만 명의 인원으로부터 모금, 빚을 갚고 남은 금액으로 1932년 6월 5일 현충사 낙성식과 영정 이후 봉안식을 하고 현충사 사적비를 건립한다.

이후 박정희 정권 하에서 이순신 장군의 성역화 과정이 진행되면서 1962년에는 충무공이 생전에 사용했다는 유물들을 수집하여 전시하는 '유물 전시관' 이 개장되었고, 1966년에는 현충사의 경역(敬域)을 확장하여 1967년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본전(本殿)과 충무공이 무과 시험을 봤던 시절 지냈었던 가옥과 활터가 개장되기도 했다.

충무공이순신기념관은 충무공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하고 전시하는 기념관으로 2011년 4월 28일 충무공탄신일을 기념하여 공식 개장했다.

 

충무문은 현충사 본전으로 가는 정문 역할을 하고 있는 한옥 모습의 문으로 1967년 현충사 성역화 지시에 따라 세워진 관문이다.

충의문은 현충사 본전의 정문으로 1932년 현충사 중건 때 세워졌다가 1967년 본전이 확장 이전하게 되면서 새로 개축하여 지어진 관문이다.

1967년 현충사 성역화에 따라 확장이전하여 신축된 콘크리트 건물로 안에는 충무공의 영정과 조선시대 때 사용했던 영기(令旗)가 보존되어 있다. 옛 본전 위의 자리에 지금의 본전을 신축하여 넓고 웅장한 모습으로 갖추게 되었다.

옥의 티가 있다면 사당의 기능을 하는 건물은 맞배지붕으로 짓는 것이 보통이나 새로 만든 본전은 팔짝지붕이다. 당연하게도 구 본전은 맞배지붕이다.

참고로 현재 내걸려 있는 한글 현판은 성역화 당시에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쓴 현판으로 예전에 걸려있는 현판은 구(舊) 본전에 그대로 존치되어 있다.

舊 본전은 현충사 한켠에 따로 배치되어 있는데 동아일보가 현충사를 새로 중건하며, 숙종이 내려준 현판을 걸고 다시 세운 것이 舊 본전.

고택은 충무공이 무과 시험을 보던 시절부터 살아온 집으로 원래는 충무공의 부인이 살던 집이었는데 충무공이 데릴사위로 오게 되면서 사실상 충무공의 집으로 바뀌었고 이후 종손이 대대로 살아오다가 지금의 현충사로 이전되어 보존 가옥으로 전시하고 있다.

참고로 상술한 종부의 만행 때문에 경매에 넘어갔다가 덕수 이씨 풍암공파에게 낙찰받았다.

충무공이 무과시험을 보던 시절부터 사용해 왔던 활터로 이 곳에는 오래된 은행나무(수령 약 500년. 두 그루가 자리잡고 있으며 충청남도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가 있고 충무공이 늘 사용했다는 과녁판이 전시되어 있다.

 

 

주소 :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오픈시간 : 매일 09:00 ~ 18:00 하절기(3월 ~ 10월)

매일 09:00 ~ 17:00 동절기(11월 ~ 2월)

전화번호 : 041-539-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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