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과 오른손에 벙어리 장갑을 끼고 마주 잡은 모양을 하고 있는 베네치아.
이 양손 사이를 가로지르는 대운하를 건널 수 있었던 유일한 다리가 바로 리알토 다리였다.
본래 나무 다리였는데 통행량이 많아 다리가 부러지는 등 사고가 빈번하자 15세기에 석조 다리 교체 공사를 시작했다.
당시 건축가를 선정하는 공고에 미켈란젤로, 팔라디오 등 쟁쟁한 예술가들이 응모했는데, 베네치아 출신의 안토니오 다 폰테의 설계 안이 선정되었다.
그는 베네치아 출신답게 대형 무역선이 다리 아래를 지날 수 있도록 아치를 높게 올리고, 다리 위에 상점을 배치하는 등의 실용성과 함께 다리 정상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운하 뷰까지 표현해냈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
1591년 완성되어 아직까지도 안전상의 보수 공사를 필요로 하지 않은 튼튼한 다리다.
1. 대운하를 잇는 첫 번째 다리
베네치아의 150여 개 운하를 촘촘하게 이어주는 다리의 수는 총 400여 개.
그 중 4개의 다리가 대운하를 지나는데 가장 먼저 건설된 다리가 바로 리알토 다리이다.
외에 아카데미아 다리, 스칼치 다리, 콘스티투지오네 다리가 있다.
2. 대형 무역선도 통행 가능했던 7.5m의 아치
아치의 가장 높은 부분은 무려 7.5m.
덕분에 대형 무역선도 지날 수 있었다.
기존 나무 다리는 무역선이 오갈 때마다 수동으로 다리를 개폐했어야 했는데 그 수고를 덜어준 것.
당시만 해도 아치형의 다리를 설계하는 것이 어려워 안토니오 다 폰테가 악마와의 협정으로 다리를 완성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3. 다리 위에 자리한 2열 상점
다리 위에는 상점이 왼쪽과 오른쪽에 2열로 배치되어 다리를 '건넌다'라기 보다 길이 연장되어 있는 느낌을 준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생활했던 베네치아 사람들에게는 다리로 인한 공간의 단절보다는 넓게 펼쳐지는 공간감이 중요했다.
한때는 베네치아의 대운하를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던 역사적인 다리
르네상스 토목 공학이 이룩해 낸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다리는 베네치아 한복판을 흐르는 대운하의 가장 좁은 부분에 우아하게 아치형으로 놓여 있다.
1100년대 이후로 계속, 이 장소에는 운하 동쪽 편에 있는 중요한 리알토 시장과 연결된 여러 개의 다리가 있었는데, 너무나 많은 인파들로 무너져 버린 다리가 한둘이 아니었다.
현재의 석조 다리는 안토니오 다 폰테와 그의 조카 안토니오 콘티노의 작품이다.
두 개의 경사로로 이루어져 있으며, 자그마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큰 배가 지나갈 수 있도록 중앙 부분은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은 목조로 건설되었던 예전 다리들과 비슷하다.
다 폰테의 디자인에서는 경사로를 따라 상점들이 줄지어 있고, 지붕을 이루는 포티코가 서 있다.
넓이가 28m에 이르는 커다란 중앙 아치 덕분에 아래로 무역선들이 지나갈 수 있으며, 약 1만 2천 개의 나무 말뚝이 아치를 지탱해 준다.
이렇게 야심찬 다리를 건설하기 위해 선발된다는 일은 크나큰 도전이었고, 다 폰테는 팔라디오와 미켈란젤로를 비롯해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뽑혔다.
1800년대까지, 이 다리는 대운하를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지금은 다른 다리들도 있고, 몇 세기에 걸쳐 그 건축과 설계의 우수성에 대해 찬반양론이 분분했음에도 리알토 다리는 여전히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남아 있다.
리알토 다리 위에는 여전히 두 줄로 가게들이 늘어서 있으며, 수없이 많은 무역업자들이 여러 세기 동안 해 왔던 것처럼, 곤돌라와 크루즈 배가 다리 아래를 지나가곤 한다.
"그림자에 싸인 리알토 다리가 궁전 뒤로부터 천천히 그 거대한 곡선을 앞으로 드리운다."
존 러스킨, 『베니스의 돌』(1851~1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