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북동부 베네토의 중심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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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해당 도시를 수도로 삼던 과거의 베네치아 공화국의 국명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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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베니스(Venice)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영어식 발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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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토 이탈리아어 발음으로는 베네치아(Venezia)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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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로는 브니즈(Venise), 독일어로는 베네디히(Venedig)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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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는 2017년 기준 26만 명으로 일반적인 이미지와 달리 이 중 대부분은 바다 위의 구도심이 아니라 육지 쪽의 신도시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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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도시에 베네치아의 창구인 베네치아 마르코 폴로 국제공항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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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도시로서의 중심지는 신도시로 상당히 옮겨왔고, 구도심은 관광지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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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심 도시 전체에 수로가 뚫려 배를 타고 다닌다 해서 물의 도시로 유명하며, 현재도 베네치아 구도심 내부에는 자동차 도로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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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도심 입구쪽의 로마광장(Piazzale Roma, 기차역 옆에 있다)에 시외버스와 차들이 돌아다니지만,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단 한대의 차량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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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자도로도 좁은 다리나 계단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아 오토바이조차 한 대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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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새벽에도 차량 소음 등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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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다가 자전거를 타고 다녀도 벌금을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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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현재에도 구도심 내 이동수단은 튼튼한 두 다리와 수상택시, 수상버스(바포레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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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들도 운행시 발생하는 파도로 인한 도시 균열을 막기 위해 좁은 운하에서는 7km/h, 넓은 곳에서는 11km/h 정도로 속도 제한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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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무라노 섬이나 부라노 섬을 가지 않는 한 오히려 걷는게 더 빠를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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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신도시 지역의 도시철도인 베네치아 트램의 1호선의 남쪽 종점이 구도심의 베네치아 피아찰레 로마(Venezia Piazzale Roma)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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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베네치아의 중앙역인 베네치아 산타 루치아(Venezia Santa Lucia)역도 구도심의 북쪽 끝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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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운하의 물길이 도로를 대신하는 특이한 도시구조 덕에 수상도시의 대명사가 되었고, 운하가 촘촘하게 들어찬 세계의 다른 도시들도 대부분 xx의 베네치아라는 식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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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나 스웨덴의 스톡홀름은 '북유럽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며, 그 외에 독일의 함부르크와 밤베르크,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포르투갈의 아베이루, 중국의 쑤저우, 일본의 야나가와 등이 그러한 케이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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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한강신도시도 LH에 따르면 아시아의 베네치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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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품으로는 xx의 암스테르담이 있다. 그리고 조금 생뚱맞지만 베네수엘라라는 국가 이름도 여기서 따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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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원주민들이 수상가옥에서 생활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처음 본 유럽인 탐험가가 베네치아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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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베네치아'라는 이름은 이탈리아 동북부에 거주하던 베네티족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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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티족의 준마는 뛰어나기로 유명해서 그리스 본토나 식민도시에서도 말을 구하기 위해 베네티족에게 찾아왔다는 기록이 있으나, 기원전 3세기경부터 로마에게 동화되어 서서히 흡수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기록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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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거주하던 지역이 로마 시대에는 '베네티아 에트 히스트리아'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현재에도 이 지역에는 베네토와 프리울리베네치아줄리아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과거 베네티아 에트 히스트리아에 속했던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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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서로마 제국이 몰락하던 시점에는 '베네티아'가 게르만족의 지배를 받지 않는 해안가를 일컫는 말이 되었으며, 그 때문에 도시 베네치아에 베네치아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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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고대부터 베네티아 해안가의 석호지대에는 어부들이 살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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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들은 이들을 "석호 거주민(incolae lacunae)"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본디 습지대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미개발지에 가까웠으며, 우리가 아는 오늘날의 베네치아는 5세기경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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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고트족과 훈족 등 여러 이민족들의 약탈을 피해서 파두아, 아퀼레이아, 콘코르디아, 트레비소, 알티노 등지에서 온 고대 로마 출신 난민들이 이 석호의 섬들(토르첼로Torcello, 이에솔로Iesolo, 말라모코Malamocco)로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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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정착민들의 흔적은 이들의 정착과 함께 건설된 산 쟈코모San Giacomo 성당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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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원래 이 섬에 영구히 정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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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전체가 습지대였기 때문에 주거 환경이 열악했고, 지대가 물러서 제대로된 건물을 지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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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고트족이 떠날 때까지 몇 년만 머물 곳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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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고트족은 서로마를 멸망시키고 아예 이탈리아에 정착해서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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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로마의 피난민들은 어쩔 수 없이 기한없이 머물만한 영구 정착지를 늪지대 위에 건설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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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떠올린 방법은 물컹한 토층 아래 단단한 층까지 닿는 기다란 말뚝을 수직으로 섬 전체에 빼곡히 박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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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이 어마어마한 육체노동을 통해 말뚝을 박고 그 위에 석판을 깔아 비로소 건물을 지어올릴 지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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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동로마 제국이 이탈리아 일대를 수복했을 때는 라벤나 총독부를 두어 통치했는데, 베네치아와 라벤나는 바닷길로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베네치아는 자치적으로 운영되며 독자적으로 성장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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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랑고바르드족을 피해 온 난민들이 오랜 기간동안 더 유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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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중앙상임통치위원회tribuni maiores는 568년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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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말라모코와 토르첼로 등 새로운 항구들이 여럿 건설되었고, 말라모코는 점차 이 지역 중심지가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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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년경 랑고바르드족은 결국 동로마 제국의 라벤나 총독부를 무너뜨렸지만 베네치아 석호 지역은 남겨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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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석호 지역은 자치적으로 운영되고는 있었으나, 여전히 공식적으로는 동로마 제국령이었고, 주민들이 지도자로 선출하는 직위도 공식적으로는 동로마 황제가 임명한 총독이었다.(나중에 공식 명칭도 '도제'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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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총독은 말라모코 섬에 주재하고 있었고, 현재 베네치아로 알려진 리알토 지역은 그저 작은 섬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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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고바르드족이 이탈리아 본토를 휘젓고 다니면서 이 지역으로 유입되는 난민들은 점점 더 늘어났고, 775년경에는 주교직이 신설되기에 이른다.(현재 베네치아 섬 동쪽 끝에 위치한 San Pietro di Castello가 주교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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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는 동로마 제국과의 세력 싸움의 일환으로 지금껏 그 어떤 민족, 그 어떤 나라도 별 신경 쓰지 않던 이 베네치아 석호 지대를 눈독들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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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들 피핀을 시켜 배를 건조해 이 지역을 정복하는일을 전담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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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5년 베네치아 내부의 파벌 싸움 및 인접 도시 그라도와의 다툼으로 베네치아는 카롤루스에게 자신들을 보호령으로 삼아 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피핀이 베네치아를 장악하자 동로마 제국은 함대를 파견해 피핀을 몰아내고 베네치아를 수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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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핀은 이를 다시 수복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807년 임시 휴전조약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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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루스에게 사신을 보낸 주모자들은 베네치아에 의해 동로마에 넘겨졌고 추방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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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년 피핀은 코마키오의 선박을 빌려 베네치아를 공격했다. 당시 중심지였던 말로모코는 아드리아 해에 면하고 있어 방어에 취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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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베네치아인들은 말라모코를 버리고 리알토로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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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군은 텅 빈 말라모코를 점령해 약탈하고 불태운 다음 베네치아군을 추적했으나 리알토 군도는 계속 저항했고 물길을 잘 아는 베네치아인과 달리 프랑크군은 얕은 석호 지대의 물길에 어두웠기 때문에 일부 선단이 좌초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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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끌리며 케팔리니아 총독 파울루스가 지휘하는 동로마 제국 함대가 반격하자 피핀은 철수했지만 역병에 걸려 사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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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년 새로운 적인 불가르 제국을 견제해야 했던 동로마 제국과 아들과 군사를 잃은 카롤루스 사이에 강화조약이 체결되는데, 베네치아 공화국은 동로마 제국의 속국으로 남고, 아드리아 해 일대 교역권을 인정받는 대신 카롤루스는 동로마 제국에게 제위를 인정받고(다만 '로마 황제'가 아닌 그냥 '황제'로만 인정) 동맹을 채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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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도제 아녤로 파르티차코(811-827)는 도제의 주재지를 현재 베네치아 위치인 리알토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이곳에 최초의 두칼레궁과 산마르코성당을 건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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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꾸준히 난민들이 유입되고 주민 수가 늘어나는 동안 베네치아인들은 이 일대를 조금씩 간척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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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간척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새만금이나 네덜란드에서 이루어졌던 간척과는 큰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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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막아 담수화시킨 후 매립하는 일반적인 간척과 달리, 베네치아인들은 이 바다를 막을 수도 없었고 막아서도 안됐기 때문에 제방 없이 나무를 엮어 파도만 막을 수 있는 정도로 벽을 쌓고 거대한 나무 말뚝을 촘촘히 박아 기초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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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뚝 위에 기단을 세우고 그 위에 벽돌을 쌓아 도시를 건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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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점차 도시가 성장하면서 갈수록 간척지도 넓어지고 더 튼튼하게 기초를 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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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12세기에는 십자군 원정에 나섰고, 4차 십자군 원정에서는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동 지중해에 영토를 가지며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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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는 북부 이탈리아의 도시들과 지역 패권을 두고 치열한 전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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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는 서유럽 국가들의 신항로 개척이 본격화되면서 지중해 항로의 중요성이 흔들리기 시작했지만, 베네치아의 군사적·문화적 전성기는 오히려 이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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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 사코 디 로마로 인해 쇠락하자 베네치아가 르네상스 건축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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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 제국을 물리치는데 큰 역할을 하며 군사적 힘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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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후 신대륙 무역으로 인해 동방 무역 독점이 깨지고 오스만 제국과의 계속된 전쟁으로 국력이 서서히 약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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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공화국이 멸망할 때 원정을 왔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베네치아를 관통하는 거대한 Z자(혹은 S자) 형태의 대운하를 보고 경탄하여 극찬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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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베네치아 공화국을 폐지하여 멸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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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나폴레옹에 의해 베네치아 공화국이 폐지된 뒤에는 나폴레옹이 베네치아를 합스부르크 제국에 넘겨주었다가, 1805년 오스트리아 제국이 프랑스 제1제국에 반환하고 나폴레옹이 세운 괴뢰국인 이탈리아 왕국의 영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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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814년에 나폴레옹이 몰락하면서 다시 오스트리아 영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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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는 베네치아와 옛 밀라노 공국 영토였던 롬바르디아를 묶어서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으로 만들고 합스부르크 왕조 황제가 국왕으로 즉위하되 총독을 보내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지배하였다.
1848년,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의 실각을 계기로 혁명이 일어나 이탈리아인 정치가 마닌을 대통령으로 하는 '베네토 공화국'이 세워졌지만 1년 만에 오스트리아의 공격을 받고 다시 항복하여 도로 오스트리아 영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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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통일 운동이 벌어지면서 롬바르디아는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의 영토로 합병되었고,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이 선언되었지만 베네토 지역과 베네치아는 여전히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신생 이탈리아 왕국은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벌어지자 프로이센 왕국과 손잡고 오스트리아를 공격했고, 전쟁의 결과 베네토까지 합병해 이탈리아 반도 통일을 얼추 완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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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일을 기해 실시된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베네치아현에서 베네치아 광역시로 개편되었다.
2020년 7월 10일에 베네치아의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 건설 중인 홍수 예방시스템 '모세 프로젝트'가 첫 시험 가동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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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방역조치가 해체돼 관광객들이 많이 오면서 베네치아의 관광업계가 회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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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경 베네치아 초기 정착민들은 토르첼로, 이에솔로, 말라모코 같은 섬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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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지역은 습지대여서 땅이 진흙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반이 그리 단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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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후반, 랑고바르드족을 피하기 위한 피난민들이 계속 몰려들면서 정주인구가 늘어나자 도시 거주인구를 늘리기 위해 단단한 기초 위에 중층 건물을 세우고 도시면적 자체를 늘려야할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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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초반 프랑크군을 피해 말라모코를 포기한 베네치아인들은 이후 118개의 섬이 운하와 다리로 연결된 거대한 도시인 '베네치아'가 세워지게될 리알토로 근거지를 옮겨 생활하기 시작하는데, 당시에는 그저 수 많은 작은 진흙 섬이 있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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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섬이라고 하기도 뭣한 것이 물 위로 살짝 드러난 퇴적층으로 바다 가운데 개펄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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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베네치아의 건설을 간척이라고 표현하는데, 일반적인 간척과는 다른 독특한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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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인들은 석호의 개펄에 통나무를 촘촘히 깊이 박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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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무로 된 기단을 그 위에 얹고, 그 위에 다시 돌을 얹어 건물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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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건물의 건축과정이 자세히 알려진 것은 17세기에 이뤄진 연구에 의해서인데,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교회가 건설될 때는 1,106,657개의 나무 말뚝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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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말뚝은 4미터 길이였으며, 베네치아의 식민지였던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등 아드리아해 연안 도시들에서 나무를 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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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회를 건설하기 위해 기초를 만드는 데에만 무려 2년 2개월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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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나무는 돌이나 시멘트 등에 비해 내구성이 약한 건축자재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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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부러지고, 뒤틀리고, 부식된다. 하지만 개펄 속에 나무를 박아 넣으면서 공기와의 접촉이 없게 되면 곰팡이나 벌레가 끼지 않아 나무가 썩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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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습지였던 한양(지금의 서울 지역)도 조선 초기 같은 방식으로 나무를 박아 기초를 다져가며 도시를 건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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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생기는 가장 큰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마실 물이다.
사방이 마시면 큰일나는 바닷물인데다 땅은 진흙이어서 지하수가 나오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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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베네치아인들은 빗물을 모아 우물을 만들게 된다. 아래 사진의 광장 지하 단면도에 구조가 나와있다.
광장 지하에는 거꾸로 된 돔 모양으로 돌을 깔고 그 속을 자갈과 굵은 모래로 채워 빗물이 여과되어 지하에 물이 모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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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산성비 피해가 없는 것이 아닌지라 현대에서는 그냥 정수 탱크를 이용하거나 들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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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필요한 전기, 수도, 통신, 가스 등의 도시 인프라는 물 속에 지을 수는 없기 때문에 길 바로 아래 얕은 지하에 건설하여 묻었다.
베네치아 운하에 면한 건물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갈수록 약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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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차에 따라 바닷물이 들고 나면서 운하에 면한 벽돌이 점점 침식되어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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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벽돌로 쌓은 벽 안의 진흙도 바닷물을 먹어 함께 쓸려 나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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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는 모터보트가 강한 물살을 일으켜 침식이 더욱 가속화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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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건물의 기초가 점점 약해져 위험한 순간이 닥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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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유속이 느린 운하에 진흙이 계속 퇴적되어 배가 다닐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이를 유지보수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들이 활용된다. 우선 운하의 일정 구간을 나무로 된 임시 제방으로 막아 물을 뺀다. 그 후 운하에 쌓인 퇴적층을 준설하고, 건물의 기초를 강화시키기 위해 벽 속으로 시멘트를 주입시켜 굳히거나 오래된 벽돌을 바꾸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