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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경기도

[서울] 청와대 - 국민 품으로 / 본관 / 영빈관 / 오시는 길 / 청와대 관람 순환버스 / 서울시자율주행버스(청와대A01)

by 훈바오 2024.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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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집무실 및 관저로 사용되었던 시설이며, 영빈관 등은 여전히 실무에 활용된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로 1(세종로)에 위치한다.

광복 이래 이승만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청와대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그 공무를 수행하는 대통령 집무실과 퇴근 후 기거하는 대통령 관저 기능을 가진 대통령궁(大統領宮)이자, 나아가 헌법기관인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진 및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행정기구 대통령부(大統領府)를 의미했다.

2022년 윤석열 대통령 집권 후 부터는 청와대 영빈관 같은 부분적 실용적 시설만 회의, 포럼 등 일부 실무와 행사용 목적으로 적극 사용하고, 그 외 대부분 시설은 국민에게 전면 개방하여 집무실 기능은 하고 있지 않다.

개방 후 청와대는 문화체육관광부 청와대관리활용추진단이 운영한다.

과거에는 문화재청 청와대국민개방추진단이 운영했었다.

이에 국가기관으로서의 대통령, 또는 대통령비서실을 줄여서 청와대, 청(靑)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미국의 대통령 관저 그 자체뿐만 아니라, 미국 대통령을 보좌하는 행정기구들을 통틀어 백악관이라 표현하는 것과 같다.

집무실이 이전된 이후에는 청와대라는 표현을 쓸 수 없고 용산 청사의 특별한 이름이 없어 이러한 고유명사보다는 기능적 명칭인 대통령실(大統領室)이 사용되고 있다.

개방 초기에는 청 대신에 대통령실의 대를 넣어 당정대라는 표현을 썼으나, 현재는 대를 빼 당정이라고만 한다.

1948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미군정사령관 관저로 사용되던 구 조선총독 관저를 이양 받아 대통령 집무실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로, 조선시대의 지명에 따라 경무대(景武臺)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제2공화국 윤보선 전 대통령이 경무대 본관의 청기와 지붕에 착안하여 청와대라는 이름으로 개칭하였고 해당 형태로 제5공화국을 지나 민주화를 통해 군사 정권이 무너지고 수립된 제6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노태우 정부 말기까지 유지되었다.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임기 말기에 민족의 자존을 높인다는 이유로 한옥 양식의 청와대 본관을 신축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일 뿐만 아니라 국가원수로서 청와대에 근무하는 인원들은 국가원수를 보좌하고 명을 받아 행정부의 장관과 차관을 지휘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청와대에서 파견 근무하고 행정부로 돌아오는 경우에는 청와대 근무자, 정치인들과 친분이 형성되고 능력이 있으니까 청와대로 파견 간다는 인식도 있어서 청와대 파견 근무 자체가 경력이 되어 복귀 후 행정부 내에서 입지가 강화된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이 가장 근무하고 싶어하는 '대한민국 권부(權府)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해방이 되면서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조선 총독 관저를 재활용하여 미군정 치하에서 미군정 사령관인 미합중국 육군 중장 존 하지 장군의 관저로 쓰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하지 장군이 물러나며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관저를 주면서 그렇게 대한민국 대통령의 관저로 쓰이게 되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 이후 과거 경복궁 북원에 있던 넓은 터의 이름인 경무대(景武臺)로 불리게 되었다.

이곳에 입주한 첫 대통령이 된 이승만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망치를 들고 가 모든 일본산 전구와 가로등을 깨버리는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콘센트를 부수라 지시했다는 말도 있다.

서울특별시가 2차례 함락당한 6.25 전쟁 당시에는 임시수도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에 임시 관저를 두었는데, 이 건물은 경상남도지사 관사를 거쳐 현재 임시수도기념관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서양식 저택으로 내부가 당시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임시수도 관련 문서, 이승만 전 대통령 관련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부산 도시철도 1호선 토성역부터 이곳까지 임시수도 기념거리가 조성되어 있고 임시수도 정부청사(현 동아대학교 박물관)와도 가깝다. 그리고 환도 이후 경무대가 다시 대통령 관저가 되었다.

 

그러나 자유당 정권에 대한 반감의식 때문에 경무대라는 이름은 원성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하야한 후 윤보선 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경무대라는 이름을 바꾸는 것을 두고 논의가 이루어졌다.

당시 서울시사 편찬위원이던 김영상이 윤보선 전 대통령에게 불려가 경무대라는 이름을 바꾸지 말 것을 요청했지만, 윤보선 전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했고, 김영상은 '화령대'와 '청와대'의 두 가지 안을 제시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본관의 청기와 지붕에서 의미를 딴 '청와대'를 선택하였다.

대통령경호처 유튜브에서 청와대에 윤보선 전 대통령이 쓴 '청와대' 바위 각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 청와대라는 명칭을 황와대로 바꾸자는 의견이 제기되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청색보다는 황색이 대통령에 걸맞는 의미의 색이라며 논란이 일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름을 또 바꿀 수는 없다."며 기존 이름을 고수하기로 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청와대를 'Blue House'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영부인 육영수가 불쾌감을 표하여 청와대를 한국어의 발음대로, 'Chong Wa Dae'로 표기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대통령 측근을 비롯한 청와대 직원들은 Blue House, 약칭 BH로 부른다.

대통령의 지시를 'BH의 하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제강점기에 총독부 관저로 지어진 건물이었던 만큼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기에는 협소하고 노후화되어 재건축하자는 의견이 여러 차례 있었으나 이승만이나 윤보선은 청와대 건물에 별로 손을 대지 않았다.

이후 취임한 박정희는 청와대를 대대적으로 개보수, 증축하였다.

당시 청와대 1층은 집무 공간으로 대통령 집무실과 서재 등이 있었고, 2층은 대통령 가족의 생활 공간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건물이 노후화되고, 협소하여 외국 정상 방문 시 수행원이 머물 공간조차 없어서 청와대를 재건축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박정희는 재건축 건의는 무시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전두환 시절에 청와대 구 본관을 다시 리모델링하였다.

이후 노태우 시절이 되어서야 본관과 관저, 프레스센터인 춘추관을 신축하여 2년 2개월간의 공사 끝에 1991년 9월 4일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공사는 당시 이명박이 대표이사로 있던 현대건설이 맡았는데, 경복궁, 창덕궁 등 궁궐을 많이 참고했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 회장이 외국 유명 호텔들과도 비교해가며 직접 문고리 모양까지 고를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청와대 관저를 신축하는 과정에서 150년 전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고 쓰인 표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1993년 2월 25일 취임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지시로 그 해 10월 구 본관이 전부 철거되었다.

현재는 '청와대 구 본관 터'라는 표식만 남아있다.

일제강점기에 북악산의 정기가 이어지는 능선을 끊기 위해 해당 건물이 지어졌다는 풍수적 해석에 따라, 벽돌과 기와는 기존 능선의 복원에 사용하고 가구와 집기는 보존하는 한편, 샹들리에와 승강기는 대통령이 사용하던 물건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도록 분해 후 재사용을 전제로 경매에 내놨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철통같이 막힌 청와대 앞길과 인왕산을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PC통신 하이텔에 '청와대 큰마당'을 개설했고, 1995년에는 CI를 도입하고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었다.

대한민국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던 2022년 3월 20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집무실 및 비서실을 서울특별시 용산구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 전날인 2022년 5월 9일 청와대에서 떠났다.

2022년 5월 10일 0시를 기해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 기능이 해제되었으며 당일부터 대통령실에 집무실 기능을,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에 관저 기능을 넘겨주고 개방되었다.

청와대는 미술관이자 역대 대통령들의 청와대 거주 역사를 다루는 박물관 같은 건물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기존 로고의 낡고 권위적인 이미지를 탈피, 다양한 사용 환경에 맞춰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는 명목으로 디자인을 개선한 새 청와대 로고가 확정되었다.

'청와대를 상징하는 청와대 본관 건물의 이미지를 그대로 살리면서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단순화, 상징화한 것으로 전체적인 형태와 색상을 개선하여 균형 잡힌 유연한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이는 국민을 섬기는 청와대, 국민과 가까운 청와대를 시각화한 것이다. 기존 로고보다 밝고 투명한 청색 컬러를 활용하여 '투명한 청와대'와 '진취적이고 젊은 청와대'의 이미지를 강조했으며, 로고 타입도 보다 현대적인 서체를 바탕으로 정교하게 획의 강약을 조정하여 이미지를 세련되게 현대화했다.'는 것이 작업 취지다.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특별시 용산구로 이전하기 전까지 청와대는 당연히 국방부 국가중요시설 및 방호 훈령에 따른 "가"급 국가중요시설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맨 첫 번째에 올라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2022년 5월 9일까지는 대한민국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 가능한 언론에 보도된 정도로만 서술할 수 있었으므로, 포털 사이트의 지도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경복궁 바로 뒤쪽에 있었기 때문에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기도 했고, 구글 어스 등 해외 지도에서는 선명하게 잘 나와있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거의 다 공개했고, 박근혜 정부 당시 세월호 7시간 및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청와대의 구조가 많이 공개되었다.

2022년 5월 10일, 청와대가 전면 개방됨에 따라 국토지리정보원 · 네이버 지도 · 카카오맵에서 청와대의 위치와 위성 지도를 공개했고, 로드뷰 · 거리뷰의 블러 처리도 해제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따른 청와대 전면 개방이 이루어지기 전에도,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 예약 신청을 통해 관람이 가능했다.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화요일~금요일과 둘째·넷째 주 토요일에 무료 관람을 할 수 있었다.

개인 관람(10명 이하)과 단체 관람(11명 이상~200명 이하)이 가능하며, 토요일은 10인 이하의 개인 관람만 받았다.

관람은 1일 4회로 오전 10시, 11시와 오후 2시, 3시이다.

매년 7월 1일부터 9월 16일까지는 오후 시간대가 1시간씩 늦춰져서 3시와 4시에 관람이 가능하다. 1회 350~450명(한국인 기준)까지 신청이 가능했다.

관람 희망일 6개월 전부터 최소 20일 전까지 신청이 가능했으며, 신청 정보가 변동되었을 시 내국인의 경우 관람일 전주 화요일, 외국인을 동반할 경우 관람일 기준, 2주 전 일요일까지 수정이 가능했다. 관람 당일 인원 추가 및 교체는 불가능했다.

인기가 상당히 좋은 편으로, 봄이나 가을 같은 시즌에는 1~2달 전에 신청해야 할 정도이며 관람 시간은 90분 정도다.

경복궁 바로 위쪽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이왕 경복궁에 가는 김에 같이 청와대에 들렀다 가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은 편이었다.

홍보관(춘추관 옆)과 녹지원, 수궁터(구 본관 터), 본관, 영빈관, 칠궁 순으로 둘러보는 코스다.

홍보관 외에는 건물 외부만 둘러보는 코스이며 간단한 기념품도 제공되었다. 그리고, 관람한다고 해서 대통령을 직접 볼 수 있을 확률은 매우 적었다. 그러므로 청와대의 외관만 살짝 둘러본다는 마음으로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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