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부산+경상도

[울산] 반구대암각화 / 울산암각화박물관 / 한반도의 선사 유적 / 세계유산 잠정목록

by 훈바오 2024. 2. 28.
728x90
반응형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蔚州大谷里盤龜臺岩刻畫),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을 지나는 태화강의 지류 대곡천의 암벽에 새겨진 암각화이다.

제작 시기는 신석기시대 후기에서 청동기시대 초기로 추정되고 있다.

이 그림은 인류의 포경 활동을 묘사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증거 가운데 하나로 인류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

반구대 암각화의 발견으로 인해 세계 최초의 포경 연도가 확 올라갔다.

영문 위키피디아에서는 기원전 6천년의 반구대 암각화를 근거로 해당 시기부터 포경이 행해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때문에 천전리각석과 함께 《울산 반구천 일대 암각화》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랐으며, 현재 정식 등재를 준비 중이다.

암각화에는 고래 말고도 야생동물 수렵을 포함해 의미를 알기 힘든 문양과 기호 등도 많이 그려져 있으며 훼손 정도가 덜했던 발견 초기에는 약 300개가 넘는 그림이 확인되었는데 이후 50년동안 침수에 의한 훼손이 발생한 끝에 현재는 육안으로 식별가능한 그림들이 많이 줄어들어 버렸다.

반구대 암각화가 발견된 대곡천 자락에는 이외에도 암각화가 여럿 발굴되었는데, 인근에 위치한 울주 천전리 각석도 그 중 하나로, 천전리 각석에서는 선사시대의 그림과 함께 약 1500년 전 역사시대 인물의 기록도 발견되어 주목을 끈다.

현재 학계에서는 천전리 각석과 반구대 암각화를 한대 묶어 울주 대곡천 암각화군(Petroglyphs of Bangudae Terrace in Daegok-ri, Ulju)이라는 이름으로 취급하고 있다.

사연댐 건립 과정에서 해당 지역에 대한 매장문화재 전수조사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만약 사연댐이 철거되어 수몰지역에 대한 전수 발굴조사가 이뤄진다면 이외에도 다른 암각화들이 많이 발견될지도 모른다.

암각화는 수렵 생활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소나 호랑이, 표범, 사슴 등 육지 생물들의 모습도 보이지만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해양 생물, 특히 고래다.

원시적 벽화임에도 고래에 대한 묘사가 매우 세밀한 편인데, 종류별로 새끼를 등에 올려놓은 고래(귀신고래), 앞뒤의 색이 다른 고래(범고래), 수많은 세로줄 무늬가 있는 유별나게 큰 고래(혹등고래) 등이 그려져 있다.

또, 고래 사냥에 대한 내용으로 미끼, 그물, 작살을 맞은 고래, 그 고래를 잡기위해 해양으로 나가는 배 등이 그려져 있는데, 10명 이상이 긴 나무배에 타 고래에게 작살을 던지고 잡은 고래를 끌고 가서 살을 발라내는 일을 하는 내용이 아주 자세히 묘사되었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이 암각화가 문자가 없었던 석기~청동기시대에 포경 교육을 목적으로 그려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림들을 잘 살펴보면 선만 새긴 것과 면을 채워 새긴 것들로 나눌 수 있는데, 이 둘이 겹쳐진 부분에서 면을 채운 것이 더 깊게 파였기 때문에 이것들이 더 먼저 그려졌다고 추정하고 있다.

면을 채운 것들은 대부분 고래 잡는 내용이고 선만 새긴 것들은 육지동물과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인데, 이를 통해 학자들은 이 지역이 예전에는 고래가 진입할 수 있는 해안 지대였으나 훗날 지형이 바뀌어 내륙 지대가 되었고 여태껏 고래를 잡던 사람들은 가축을 기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반구대 암각화가 있던 곳까지가 바다였다고 하기에는 좀 어려운 것이,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한반도 내륙 깊숙한 곳곳에서 당대 바다의 흔적이 발견되어야 한다.

그리고 만약 그때 이 지역이 바다였다면 태화강 상류를 따라 선을 긋고 낙동강 하류에서 북동쪽 양산단층을 따라 선을 그었을 때 두 선이 만나며 가르는 한반도 남동쪽 지형이 섬이었다는 말이 된다.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곳의 해발고도가 그 서쪽의 양산단층 평지보다 높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기후변화 등으로 고래가 잘 안 잡히자 육상생물 사냥으로 생계방향을 틀어다고 보는 게 나을 것이다.

이 암각화에는 사람도 그려져 있는데, 깃털 등을 온몸에 장식하고 굿을 하는 사람, 그 곁에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다.

여기 그려진 남자들은 성기가 크게 묘사돼 있는데 자손 번성을 기원하기 위해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반구대 암각화가 언제 그려졌는지 그 정확한 연대를 비정하는 것은 아직 논란이 있다.

암각화의 최초 발견자인 문명대 교수를 포함해 신석기시대론을 주장하는 사람도 많지만, 김원용을 포함해 청동기시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국사교과서에도 청동기시대로 비정되어 있다.

다만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이 2019년 발간하여 가장 최근 연구들이 수록된 대곡천 암각화군 종합 연구보고서에서는, 경주대 강봉원 교수와 하인수 전 임시수도기념관장이 신석기시대론을, 계명대 김권구 교수가 청동기시대론을 주장하고 있는데, 종합적으로 볼 때 신석기 시대 말기 쪽으로 비정하는 논지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리는 것은 사실이다.

암각화가 그려진 연대를 추정하는 청동기 시대 측의 주요 논거는 다음과 같다.

 

청동기 시대로 비정하는 측의 주요 지지 근거

첫째, 신석기시대에는 외양선을 제작하지 못하며,

둘째, 고래를 잡는 도구 역시 철기로 보이며,

셋째, 신석기 시대에 고래를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고 보이지 않고,

넷째, 바위를 쪼아새기는 것이 가능한 것 역시 철제 도구이고,

다섯째, 반구대 인근지역에 신석기 시대 유적보다 청동기 시대 유적이 더 많다는 것

이에 대해 신석기 시대를 비정하는 이들의 주요 반론은 다음과 같다.

청동기 시대 지지측에 대해 신석기 시대로 비정하는 측의 주요 반론

첫째, 신석기시대 유적인 부산 동삼동 패총등에서 발견된 흑요석 등을 보면 이미 신석기 시대에 바다를 건너 구마모토, 규슈 등과 교류를 했는데 외양선이 없었다 할 수 없고,

둘째, 고래를 잡는 것이 반드시 철기로만 가능하다고 보이지 않고,

셋째, 동삼동 패총에서 발견된 수많은 고래 뼈들을 보면 이들은 분명히 고래 사냥을 했으며,

넷째, 암각화가 새겨진 셰일 퇴적암층은 철기가 아닌 석기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이미 기원전 만년의 미국이나 기원전 3만년의 유럽의 유적에서 밝혀졌고,

다섯째, 반구대 인근에는 신석기 시대 유적도 많이 있다는 점을 든다.

신석기 시대로 비정하는 측의 추가 근거

여섯째, 근교의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외해 항해 또는 고래사냥에 관련된 유적이 발견된 적은 한번도 없다는 것,

일곱째, 반면 울산 남구 황성동의 신석기 유적에서는 고래 경갑골과 경추에 골촉이 박힌 뼈가 발굴되었고,

여덟째, 청동기 시대의 다른 암각화 유적들의 추상성,상징성에 비교했을 때 반구대 암각화에서 보이는 사실적 표현이 궤가 다르고 분명히 연대가 다르다는 것을 논거로 든다.

신석기 시대 지지측에 대해 청동기 시대로 비정하는 측의 주요 반론

셋째 주장에 대해 동삼동 패총의 고래뼈들은 죽어 바다에 떠밀려온 것일 뿐이라며 반론하였고,

일곱째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죽은 고래를 가르기 위해 골촉도구를 사용했을 뿐이라고 반론하였다.

신석기 시대 지지측에 대해 청동기 시대로 비정하는 측의 재 반론

동삼동 패총에서는 아기 고래의 뼈도 발견되었는데 아기고래가 죽어서 바다에 떠밀려올 확률은 낮고, 죽은 고래 시체가 썩어서 폭발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재반론한다.

다만, 해당 논쟁은 아직 확실하게 결론지어지진 않았기에 일반적으로는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에 걸쳐 그려졌다고 애매하게 일컬어진다.

신석기-청동기 시대의 벽화 가운데 상태가 좋은 것으로, 몇 안 되는 한국의 포경 생활사의 시초를 담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사실 특이하다면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한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가끔 고래들이 지나다니는 곳 근처에 있는 나라임에도 포경의 역사가 짧고 기록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선사 시대의 문화와 포경 역사를 모두 담고 있는 반구대 암각화는 꽤 높이 평가받는다.

또한 세계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데 이 암각화가 원시 포경의 모습이 그려진 최초의 기록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암각화는 세계 학술적으로도 유명한 편이며 영어 위키백과의 포경 항목에도 인류의 포경 역사의 시작 부분에서 맨 처음 언급된다.

이곳은 울산광역시에서도 상당히 외진 곳에 위치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348번 버스를 이용하면 갈 수 있는데 하루에 몇 번 안 다니기 때문에 시간표를 맞춰야 하며, 울산역이나 언양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면 환승도 해야 한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린 뒤에도 계곡 안쪽에 있어 자가용을 이용하든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어느 정도는 걸어야 한다.

근처에 있는 울주 천전리 암각화와 달리 실물 바로 앞에서 볼 수는 없어서 뭐가 새겨져 있는지는 육안으로는 거의 안 보인다.

 

얼마나 보이는지는 햇빛의 방향이나 관람자의 시력에 따라 다른데 그림을 하나도 못 찾는 사람도 많을 정도다.

위에도 언급했듯 암각화가 아니라도 기본적으로 경치가 좋은 계곡이고 공룡 화석이나 대나무숲, 늪지대도 있고 역사시대 유적지도 많은 곳이니, 암각화를 관찰하는 것 자체에만 큰 기대를 할 필요는 없다.

대신 실물 크기의 모조품이 울산박물관 등에 전시돼 있고, 울산역 내부의 자투리 공간에도 암각화 일부를 부조로 조각해 놓은 곳이 있다.

햇빛이 암각화에 비칠 때 가장 그림이 잘 보이는데 4월부터 9월 중순 사이 맑은 날 오후 4시가 잘 보이는 시간이라고 한다.

그리고 10월 중순부터 2월 말까지는 24시간 내내 암각화에 햇빛이 비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햇빛이 비치지 않는 시간대에 가도 비치된 무료 망원경으로 잘 보면 뚜렷한 그림 몇 개는 보인다.

울주 천전리 각석까지 산책로로 이어져 있다.

여긴 반구대보다 훨씬 바위에서 가까운 위치에서 관람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림이 훨씬 잘 보이므로 선사시대 암각화를 실제로 보는 게 목적이라면 여기로 가는 게 낫다.

근처에 울산암각화박물관이 있다.

반구대 암각화로 오는 버스를 타고 내리는 곳이기도 한데,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를 비롯 국내외의 암각화에 대한 박물관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한 나라의 국보임에도 수몰되어 훼손이 반복된 끝에 멸실될 위기에 수십 년째 처해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반구대 암각화가 위치한 대곡천의 수위가 대곡천 하류에 위치한 사연댐으로 인하여 높아졌기 때문으로, 강우량이 적은 건기에는 수량이 줄어들었다가 강우량이 많아질 때 수위가 급격히 불어나면서 암각화가 물에 잠겨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훼손의 정도는 아주 심각하며, 이미 2009년 당시 문화재청 조사에서 암각화의 훼손 정도는 6단계 중 5단계에 달했을 정도이며 2016년 조사에서는 이미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그림이 300점 중 30여점도 되지 않는 수준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미 암각화는 훼손을 우려할 시기를 넘어서 존재 자체를 걱정해야할 단계로 넘어가버린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울주 천전리 각석과 반구대 암각화가 신석기 시대에 처음 그려진 이후 역사 속에서 거의 수천년 동안이나 완전히 잊혀져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만 그림이 그려진 신기한 암벽이 있다는 식으로라도 구전되어 내려오던 문화재들은 반고사 터를 탐사하기 위해 내려온 동국대 문명대 교수 탐사팀에 의해 1970년 천전리 각석이 재조명된 이후 약 1년 뒤 2차 조사에서야 재발견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때는 1965년 건설된 사연댐이 이미 가동되고 있는 상황이었고, 당시에는 문화재 보호와 관리에 대한 의식 수준이 무척 낮았기 때문에 암각화가 물에 잠긴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별다른 대처방안이 검토되지 못하고 유야무야되었다.

때문에 반구대 암각화는 거의 반세기 동안 물에 잠겨 물살에 휘말려 침식되고 풍화되면서 훼손되어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참고로, 이러한 충격적인 관리 실태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하려다 실패했다는 풍문이 있다.

그나마 문화재 보호에 대한 의식 수준이 함양된 00년대에 들어서야 암각화 훼손 문제가 재조명될 수 있었으나, 조사가 반복되면서 이미 암각화의 침식 및 훼손의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결국 반구대 암각화를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암각화 앞에 물막이 설치, 사연댐의 수위조절, 사연댐 수문 설치 등 여러 가지 방안들이 제시되었으나 대부분 실패하거나 큰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 해결이 더딘 가장 큰 문제는 사연댐이 울산시민의 식수원으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때문에 울산시는 암각화에 대한 보존 의지보다도 식수원 확보를 더 중요하게 여겨 사연댐의 수위 확보를 가장 우선하여 생각하였고, 그나마 울산시의 전향적인 양보에 의하여 사연댐에 수문 설치가 결정될 수 있었으나, 수문 설치가 오히려 암각화를 보존하기보다 훼손을 촉진한다는 의견까지 나오면서 현재로써는 확실한 방책이 없는 상황이며 암각화가 불과 100년 뒤까지라도 보존될 수 있을지의 여부는 불확실하다.

결국 침식을 막아 훼손을 지연할 수 있도록 이렇게 이동식 댐을 설치하는 계획이 나왔다.

구조상 댐 안쪽에 무빙워크 비슷한 장치도 있어 가만히 플랫폼 위에 서서 암각화를 감상할 수도 있다.

해당 방책은 사연댐의 수위를 건드리지 않고 암각화의 침식과 풍화를 모두 막을 수 있기에 암각화를 영구히 보존할 결정적인 해결책으로 한동안 주목받았다.

그러나 물막이 댐의 최종 모형 실험 결과, 투명 물막이판 모형의 연결 부분에 누수가 발생하여 실험이 실패했다.

이를 두고 울산대학교 조홍제 교수는 '실패가 예견된 방안' 이라고 밝혔다.

실험 비용은 28억이 들었다고 한다.

2016년 7월 24일 결국 이동식 댐 설치 방안은 백지화 되었다.

울산시는 지난 21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건축분과 회의에서 임시 물막이 안건을 심의해 사업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24일 밝혔다.

물막이 안건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심지어 울산시 또한 암각화의 보전에 큰 의지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 2017년 울산시가 국토부에 보낸 요구사항을 살펴보면 울산시가 사연댐 내진능력 보강에 맞춰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위한 수위조절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명문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사연댐을 식수전용으로 명문화할 것을 요구하는 등 사실상 울산시가 사실상 사연댐을 영구히 식수원으로 사용하면서 대체 식수원 확보 의지 또한 없음을 드러내었다.

울산시의 이러한 미온적 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돈으로, 울산시 내에 위치하여 이용부담금이 극히 낮은 사연댐과 달리 낙동강은 톤당 170원으로, 낙동강을 취수원으로 활용하면 물 사용료로 수자원공사에 최소 월 20억원을 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큰 비판을 받은 울산시는 결국 수자원공사와 협의 끝에 단순히 사연댐의 수위 조절, 즉 암각화의 침수 수위인 53m를 넘지 않도록 사연댐을 상시 관리하여 훼손을 지연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웠으나, 이 또한 현실적으로 큰 효과가 없을뿐더러 장기적으로 볼 때 훼손의 정도를 늦출 뿐 최종적인 해결책도 아니라는 점에서 크게 비판받고 있다.

평시 대곡천에서의 사연댐 유입수량은 초당 4~5t에 불과하여 초당 5t의 배수능력을 가진 양수기로 수위조절이 가능하지만 매년 반복되는 호우시 최대 2~300t까지 증가하는 유입수량을 양수기를 통해 배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사실상 수위조절이 불가능하다는것이 요지이다.

2020년 11월 18일 한국수자원공사와 울산시가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해 업무 협약을 맺어 앞으로 암각화를 보존하면서 훼손되지 않게 방안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사연댐은 따로 수문이 없는 취수댐으로, 수위조절이 필요할 경우 양수탑을 이용해 최대 초당 5t씩의 물을 배수할 수 있다.

따라서 홍수시 최대 2~300t까지 늘어나는 유수량을 조절할 방법은 사연댐이 최대 수위까지 차오른 뒤 넘쳐서 자연방류되는 방안밖에 없었던 것이다.

2021년 4월 13일 그리고 환경부와 수자원공사가 토론회를 열고 문화재청, 울산시 등이 모여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울산시 등은 해당 방안을 통해 사연댐의 수위를 상시로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해당 방안에 대해서 울산대학교 조홍제 교수는 경상일보에 사설을 기고해 해당 방안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내었다.

요약하자면 암각화가 물에 잠기면서 침식되는 것보다, 수위조절을 한다며 수위를 어중간하게 낮추었을 때 매년 반복되는 홍수시에 빠른 유속으로 세굴되는 정도가 훨씬 빠르다는 것.

2022년 4월 5일 그러나 비판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결국 수문으로 설치하기로 했고 이후 구미시와 대구와 협약을 맺고 부족한 식수를 낙동강의 운문댐에서 끌어오는 것으로 최종 합의가 되었다.

 

 

주소 : 울산 울주군 두동면 반구대안길 254 울산암각화박물관

운영시간 : 09:00 ~ 18:00 (매주 월요일 정기휴무)

* 월요일이 공휴일인경우 다음날 휴무

전화번호 : 052-229-4797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