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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일본

[일본] 도쿄 메이지 신궁 めいじじんぐう - Meiji Shrine / 신사 / 메이지 천황 / 쇼켄 황태후 / 인공림 / 토리이 / 술통

by 훈바오 2024.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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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신궁(明治神宮, Meiji Shrine)은 일본 도쿄도 시부야구 요요기 구역에 위치한 신궁이다.

메이지 덴노와 쇼켄 황후 부부를 제신(祭神)으로 받든다. 메이지 신궁에는 쇼켄 황후가 '쇼켄 황태후'란 이름으로 봉안됐다.

다이쇼 덴노가 즉위한 뒤 쇼켄 황후가 사망했으므로, 당시 기준으로 (생모는 아니지만) 천황의 어머니, 즉 황태후였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메이지 덴노의 아내로서 신궁에 봉안할 경우에는 황태후보다는 황후라고 칭함이 합당하지 않느냐.' 하는 의견이 많다.

일본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본디 '쇼켄 황후'라는 명칭으로 봉안해야 마땅했지만, 궁내대신이 실수로 '황태후'라고 적어 다이쇼 덴노로부터 재가를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후 칭호를 정정하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한번 정한 이상 바꾸는 것도 황공하단 이유로 지금까지 쭉 이어졌다고 한다.

메이지 덴노는 1912년(메이지 45년) 7월 30일, 쇼켄 황후는 1914년(다이쇼 3년) 4월 9일에 각각 사망했다.

이후 지금 자리에 메이지 신궁을 지어, 1920년(다이쇼 9년) 11월 1일 낙성식을 겸하여 진좌제를 거행함으로써 메이지 덴노 부부의 신위를 봉안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일본의 패전이 거의 눈앞으로 다가온 1945년 4월 14일에 미군 공습으로 건물 대부분이 파괴됐다. 패전 이후인 1946년 5월에 부지에 가건물을 짓고 축제를 열었다. 그 뒤 본격적으로 재건을 시작하여 1958년 11월에 다시 낙성하였다.

신사 내에는 와인과 청주가 가득 담긴 통들이 있다.

청주는 신사 내 행사 때 쓰려고 각 양조업체에서 기증한 것으로 광고효과가 상당하다.

 

와인은 생전에 와인을 좋아한 메이지 덴노를 추모하기 위해 부르고뉴에서 기증받은 것들이다.

100년이 넘은 물건들이므로 뚜껑 따면 굉장하겠지만 안은 텅 비었다.

아마도 신사에서 일하던 누군가가 마시지 않았겠냐는 도시괴담 같은 말이 정설로 굳어진 듯하다.

현실적으로는 보관미비로 인한 증발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100년간 전쟁에 대지진에 태풍에 홍수 등등 온갖 자연재해는 다 있었고 그와중에 실외보관을 하다보니 관리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 술 전문가도 아닌 신사 직원들이 관리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보니 통이 상해서 내용물이 증발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본다.

신궁 배전 내에서는 앉으면 안 된다. 신관이나 무녀가 와서 혼낸다.

참배로 옆에 여러 사진과 함께 일본어ㆍ영어ㆍ중국어ㆍ한국어 순서로 메이지 덴노의 일생에 대해 쓴 기다란 설명문이 있다.

전통 결혼식 혼례장으로도 꽤 쓰인다. 일요일 오전 10시 혹은 11시에 가면 전통혼례식의 시작 혹은 끝을 볼 수 있다. 2018년에는 아키히토 덴노의 5촌 조카 아야코 공주도 여기서 결혼식을 올렸다.

경내 부지만 약 20헥타르, 전체 부지는 약 73헥타르(22만 평 남짓) 정도로, 일본 내 허다한 신사 중에서도 가장 큰 편에 든다.

가는 방법은 JR 동일본 하라주쿠역이나 도쿄메트로 후쿠토신선 또는 치요다선 메이지진구마에<하라주쿠>역에서 도보로 1분 정도. 입구까지만 도보로 1분 정도 본 신궁까지는 꽤 긴 참배로를 걸어들어 가야 한다. 한 5~6분 정도

 

신궁에서 동쪽으로 가면 메이지 신궁 야구장 옆에 메이지 신궁 외원(明治神宮外苑)이란 시설이 나온다.

메이지 천황이 사망했을 당시에는 군대의 연병장이었는데, 여기에 천황의 시신을 운구하여 장례식을 치른 이후로 메이지 천황을 기념하는 공원처럼 되었고, 메이지 신궁 창건 이후로는 신궁의 부속시설이 되었다.

메이지 신궁 앞의 다리는 진구마에라 하여 옛날 코스프레, 그중에서도 고스로리 계통의 명소로 유명한 곳이지만, 이후엔 코미케나 다른 행사에 밀려 많이 죽은 상태.

그외 길거리 밴드들이 가끔 거리 공연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평일에도 로리타나 메이드 복장을 한 코스플레이어를 항상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새해 첫 참배 스팟으로 유명한 곳으로, 하츠모데 풍경 등이 뉴스에 나올 때는 항상 이곳이나 가마쿠라의 모습이 나온다. 새해 첫날 하루에만 3백만 명 정도가 찾아온다고 한다.

신궁 내 본당 건물의 기둥 따위를 보면 온통 패인 자국으로 가득하다. 새해에 너무 많은 인파가 몰리자, 참배하고 싶지만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안쪽으로 동전을 던져 생긴 자국이다. 거의 천장 부근에도 패인 자국들이 가득한 것을 보면 정말 참배하기 힘든 듯.

건축물 자체는 그다지 특이할 것이 없지만, 지붕에 있는 푸른 기와는 구리로 만든 것이다. 나라현 텐리시에 있는 천리교 본부의 교조전(敎祖殿)도 기와를 구리로 만들어 색이 푸르다.

붉은 빛이던 새 구리 기와가 공기 중에서 물과 이산화 탄소에 의해 산화되어 푸른빛으로 변한 것인데, 녹청 피막이 형성되면 더 이상 녹슬지 않아 반영구적이다. 참고로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의 푸른 돔도 구리로 만들었다.

참고로 울창한 숲이 주변을 감싸는데, 인공림이다. 아무것도 없는 평지에 당시 일본 식민지 등지에서 나무를 공수하여 심은 것. 대략 10만 그루가 넘는다. 최초구성 때는 장기적으로 100년이면 숲을 이루리라 예상하였으나 50년 만에 지금과 같은 숲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맨 처음 사진의 거대한 토리이는 저것과 또 하나, 2개가 있는데 둘 다 통나무로 만들었다.

대만에서 헌납 받아서 만든 것. 그것도 하나는 벼락을 맞아 쓰러져서 또 대만에서 헌납을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대만은 조선에 비해 삼림 황폐화가 덜 이루어져 원시림이 비교적 많았다.

여하튼 위의 인공림과 더불어 당시 일본의 국력이 강성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

이러한 거대 인공림 덕분에 종교시설이라는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공원의 기능도 수행하기 때문에 외국인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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